서점에서 작가의 말을 보고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바로 회사에 희망도서로 신청해(우리 회사 최대 장점 : 도서관이 있고, 매달 희망도서 신청하면 엥간하면 다 사줌), 읽기 시작한 지는 꽤 되었는데 내가 멍청해진 건지 책이 어려운 건지 잘 안 읽혀서 완독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책 좀 읽어야지 읽는 속도도 느려지고 이해하는 속도도 느려졌다. 아직 회사 도서관에서 뽀려온 책이 한 바가지라 얼른얼른 읽고 반납해야 한다. 쟤들이 내 작고 소중한 책장을 다 차지하고 있다. 사실 이 책 포함 8권이나 빌려뒀음 ㅎㅎ
이 책은 미국의 밀레니얼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한국의 밀레니얼인 내게 적용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는 이야기라 놀랐다. 우리나라의 사회나 경제 구조가 글로벌화되면서 미국 등 선진국을 참고한 부분이 많아 그런지 비슷하더라. 이 책의 말미에서 작가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작가는 일본을 예로 들며 일본에서 일어난 일들이 전혀 특수하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미국인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글로벌로 모든 게 연결되어 버린 지구촌은 색깔만 조금 다를 뿐 모두가 엇비슷한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부분이다.
목차에 따라 가보자. 이 책은 우리의 바로 윗세대인 베이비부머부터 이야기한다. 자식 세대인 밀레니얼들이 토로하는 힘듦을 가장 잘 이해해줘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세대기 때문이다. "Latte is a horse(나때는 말이야)"라는 유행어가 괜히 나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인생은 원래 힘들다, 우리 때는 더했다, 진짜 힘든 게 뭔지도 모르면서 징징거리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자라왔을까? 어떻게 번아웃에 빠졌을까? 작가는 그들이 우리를 만들고 키웠기 때문에, 부머의 번아웃을 이해해야 밀레니얼의 번아웃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머의 번아웃은 사회의 위기가 개인에게 전가되면서 시작되었다. 부머의 윗세대가 잠시나마 누릴 수 있었던 경제적 안정과 상대적 평등은 점점 사라졌다. 개인이 알아서 성공하거나 실패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 예전이었으면 회사가 부담했을 직원 훈련마저 개인의 몫이 되었다. 중산층으로 올라가거나 중산층을 유지하게 해 줄 많은 사회 복지의 사다리들이 거둬졌다.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늘어나고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부머가 유일하게 통제를 시도라도 할 수 있는 건 그들의 자녀뿐이었다.
일명 헬리콥터 육아라 불리는 집중 양육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며, 경제적 안정을 원하고 계급 유지를 위해 고투하는 부모의 태도를 그대로 학습했다. 이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메리칸드림을 쟁취하기 위해 부모 세대보다 더 열심히, 더 잘,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자격을 가지고 일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 여정의 첫 단계가 바로 좋은 대학이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밀레니얼은 성공하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대학 학위를 요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선 성공한 삶을 살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중산층 이상의 안정을 누릴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발판이 대학이었다. 밀레니얼들은 명문대 진학을 위해 노력하며 일하는 법과 이력서를 만드는 법을 자진해서 배웠다. 대학에 가서도 비싼 학비를 감당해내며 학위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밀레니얼 세대에서 대학은 희소성을 잃었고, 고용시장의 상황 역시 점점 나빠졌다. 회사들은 차고 넘치는 지원자들 속에서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 학위 말고도 더 많은 자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밀레니얼들은 부모의 성에 차는 동시에, 비슷한 또래에게도 좋은 인상을 주며, 더 나은 인생을 산다는 꿈을 만족시키는 멋진 일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그래야만 성공한 삶이니까. 여기서 실패하면 열정이 부족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기회가 찾아오지 않은 것은 개인의 문제였다. 열정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자는 성공한다는 논리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다. 밀레니얼들은 더 노력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무급인턴십 등으로 자신을 혹사했다.
와중에 일자리의 질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일터의 균열과 불안정은 1980년대 미국인들이 자유 시장 논리를 받아들이며 찾아왔다. 정부의 개입이 없으면 경제는 저절로 문제를 해결할 것이며, 그 결과 더 부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80, 90년대의 정치인들은 노동에 대한 보호 장치를 철회하고 정부 규제들을 줄여나갔다. 시장 논리에서 살아남고 싶어 하는 기업들에게 컨설턴트들은 비필수 노동을 아웃소싱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을 높이라고 권고했다.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잘라내려는 다운사이징 전략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풀타임 노동자들은 언제든 해고할 수 있고, 기업의 이윤을 나누지 않아도 되는 임시직 노동자들로 대체되었다. 괜찮은 임금, 버젓한 복지, 안정적인 근무 스케쥴은 모두 옛말이 되었고, 위험의 대이동 이전에 있었던 낙수효과는 모두 사라졌다. 형편없는 일자리가 뉴노멀이 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무실에 남아 있을 만큼 중요하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일을 끝마치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과로와 워커홀릭이 미덕인 세상이 찾아왔다. 사무실을 벗어나 독립한 프리랜서들의 상황은 더 심했다. 그들은 매 순간순간을 평가받으며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했다.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일할 사람은 널렸고, 일하지 않는 모든 시간은 마이너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버와 도어대시, 에어비앤비 등이 만들어낸 긱 경제는 사태를 악화시켰다. 공유경제에서 프리랜서의 일은 그저 취미로 돈을 좀 벌어보려는 시도로 평가절하된다. 공유경제는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잘 포장된, 다음 임시 일자리를 미친 듯이 찾는 또 다른 시궁창이다.
인터넷(또는 핸드폰)이 가져온 수많은 편리함은 사람이 동시에 많은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는 이메일을 확인하고, 돈을 송금하고, 가족과 연락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책을 읽는 등 많은 일을 인터넷으로 해낸다. 끊임없는 알림들은 우리가 모든 일을 다 해낼 수 있다고, 더 나아가 그게 의무라고 믿게 만들어 우리의 삶을 장악했다. 그리고 모든 걸 다 해내지 못하고 실패와 좌절을 반복해서 겪으며 스스로를 탓하도록 부추겼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일한다. 그러나 일하지 않는 시간조차도 자꾸만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우리를 지배한다. 자유 시장 경제의 효율성이 우리의 여가마저 잡아먹었다. 모든 시간이 이론적으로 더 많은 일로 전환될 수 있다면, 일하지 않는 시간은 잃어버린 기회 또는 비참한 실패로 변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여가와 취미마저 자기 계발 또는 돈을 벌 다른 수단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육아는 이 모든 번아웃에 기름을 붓는 존재다. 부모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완벽함을 요구받는다. 특히 워킹맘들은 사실상 2교대 근무에 가까운 매일을 보내고 있다. 가정에서는 아이를 제대로 케어하지 못할까봐, 직장에서는 가정의 문제를 끌고 와 피해를 끼칠까 봐 매사가 긴장의 연속이다. 한 명의 수입으로는 아이를 제대로 부양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둘 다 일을 시작하면, 근무시간에 아이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주변에 도움을 청할 가족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를 맡길 보육 서비스는 터무니없이 비싸다. 이 모든 건 고민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는 2인 이상의 가정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 혼자서 육아를 감당하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아직 사회는 이러한 상황에 맞춰 충분히 변화하지 못했다. 원인은 체제에 있다. 전체를 아우르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개인에게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는 방법으로는 육아 번아웃은 물론 그냥 번아웃도 치료할 수 없다. 밀레니얼들은 애초에 폄하당했고 오해받았으며 애초에 실패하게끔 설계된 상황에서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럼에도 더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난받았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스스로를 몰아세울 인내심과 적성과 자원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를 위해 싸울 힘도 분명 있을 것이다. 반드시 이렇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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