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미니멀리즘을 표방하고 공부를 시작하면서 알게 된 책. 읽어야지 읽어야지 벼르고 있다가 회사 찬스로 시작했다. 내 멍청함을 한 번 더 느끼게 해 준 책이다. 읽는데 진짜 오래 걸렸다. 구절구절 표시도 진짜 많이 해두었고. 그도 그럴 것이 사실 현대 철학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 미니멀리즘 관련 도서인데... 요즘 많은 읽기 쉬운 에세이 책이 아니라 진짜 철학 사상에 대한 입문서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그렇게 딴짓한 나한테는 어려울 수밖에 없는 책. 이걸 제목만 보고 꽂혀서 읽겠다고 나댔으니... 과거의 나 반성해.
"소유냐 존재냐"는 무려 1976년에 쓰여 1996년에 처음 번역된 책이다. 저자인 에리히 프롬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이 책을 내면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소유"와 "존재"의 문제 속에 놓여있다고 봤다. 책이 쓰인 지 벌써 40년이 훨씬 더 넘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읽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소유"에 더 주안점을 두고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지만.
목차부터 살펴보자. 이 책은 크게 네 파트로 나뉘어 있다.
서론 위대한 약속, 이행되지 않은 약속과 새로운 선택 장은 1976년 이전까지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설명하고, 그게 왜 문제인지,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연 지배, 물질적인 풍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개인의 무한한 자유. 우리에게도 익숙한 개념들이다. 지금도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에리히 프롬은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이 개념들이 어떻게 사회를 망쳤는지 설명한다. 그가 무궁한 발전에 대한 위대한 약속들이라고 일컫는 네 가지 개념들 때문에, 우리 사회는 인간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보다는 체계의 성장을 위해서 무엇이 좋은가라는 물음을 기반으로 돌아간다.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인간이 지워진 것이다. 왜 인간이 지워졌는지, 어떻게 해야 우리 사회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를 인간의 두 가지 실존 양식인 소유와 존재양식을 통해 이해하는 게 이 책의 주제이다.
제 1부 소유와 존재의 차이에 대한 이해 장에서는 소유와 존재, 두 실존 양식의 차이에 대해 살펴본다. 추상적인 개념이라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기에 학습, 대화, 독서 등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소유와 존재양식이 어떤 식으로 동작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따 구절 인용으로 확인해보겠지만 일상생활에 내재된 소유와 존재양식을 깨닫게 되어 (어렵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마지막 내용은 뇌를 살짝 빼놓고 읽었다. 마지막에서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 그리고 소유와 존재적 실존 양식을 가장 심도 있고 명쾌하게 분석한 신학자인 에크하르트의 생각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무교인 나로서는... 전혀 흥미가 가지 않는 챕터라 살짝 아쉬웠다.
제 2부 두 실존 양식의 근본적 차이에 대한 분석 장에서는 각 실존 양식에 대해 더 깊게 분석한다. 무엇을 바탕으로 그 실존 양식이 생기게 되었는지, 이로 인해 사람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게 되는지, 어떤 요소들이 이러한 실존 양식을 더 강화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특히 우리가 낯설게 느끼는 존재양식이 소유 양식과 어떤 식으로 다른지를 다양한 개념에 빗대어 보여준다. 안정-불안정, 두려움-긍정, 현재-과거-미래 등 내게 친숙한 개념들을 기반으로 소유와 존재를 설명하니까 이해하기도 조금 더 편하고 내 스스로도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 마음에 들었던 챕터다.
마지막 제 3부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사회 장은 진짜 많은 생각을 들게 한 부분이다. 에리히 프롬이 서론에서 제시한 숱한 문제점들을 대처할 여러 가능성들을 서술하고 있다. 1970년대를 살던 사람이 써놓은 사회문제 해결방안 자료집인 셈이다. 상당수가 이상적이기는 하나 맞는 말이라 놀라웠다. 읽으면서 더 놀란 부분은, 45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사회가 그 해결책들 중 절반 이상도 이행하지 않고 비슷한 소리만 계속해서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문장이 생각났다. 우리는 역사 속에 답이 있고, 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며 역사의 중요성을 항상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배우기만 할 뿐, 역사의 실수에서 깨달음을 얻고 시정하는 태도는 아직 갖추지 못했다. 오죽하면 "인간의 흑역사"라는 책이 나올까. 그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케슬러 증후군이라는 현상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도 같은 말이 하고 싶어져 남겨본다.
케슬러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일찍이 1978년 NASA의 과학자 도널드 케슬러가 처음 예견한 현상이다. 그 후로도 우리는 우주에 잡동사니를 계속 열심히 버려왔지만. 문제는, 궤도상에서 뭔가를 버리면 그게 어디로 가지 않는다는 것. 우주선에서 던진 쓰레기는 우주선이 돌던 궤도와 똑같은 궤도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돌게 된다. 그러면서 다른 쓰레기와 충돌하기도 한다. (중략)
도널드 케슬러는 이렇게 내다보았다. 언젠가 결국 우주의 쓰레기 밀도는 어떤 임계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 그때부터는 매번의 충돌이 걷잡을 수 없이 더 많은 충돌로 이어져, 결국 우리 지구는 초고속 쓰레기 미사일의 거대한 장막으로 뒤덮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성은 쓸모가 없어지고, 우주로 나간다는 것은 치명적 위험을 안게 된다. 사실상 지구에서 영원히 못 나가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묘하게 시적인 결말인 듯하다. 인류의 여정이, 그 모든 탐험, 그 모든 발전, 그 모든 꿈과 위대한 사상들을 거쳐서, 결국 우리 손으로 만든 쓰레기 감옥에 갇혀 사는 운명으로 귀결된다니. - 톰 필립스의 '인간의 흑역사' 중
그리고 책을 읽으며 내가 표시해둔 문장들이다.
33p.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소유나 존재냐의 양자택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눈에는 소유한다는 것이 삶에 포함된 극히 정상적인 행위이다. 살기 위해서 우리는 사물을 당연히 소유한다. 그뿐이랴, 사물을 즐기기 위해서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유하는 것을, 점점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을 지상목표로 하는 사회,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회 속에서 소유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에 어찌 양자택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존재의 본질이 바로 소유하는 것에 있어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40p. 존재와 소유 가운데 어느 편에 더 비중을 두는가 하는 일반적 추이현상은 지난 몇 세기 동안 서구 언어에 나타난 명사의 사용증가와 동사의 사용감소 현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명사란 어떤 사물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우리는 “나는 사물을 소유하고 있다"라고, 이를테면 “책상이나 집, 책이나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의 행위를 적절히 표기하는 형태는 동사이다. 예컨대, “나는 존재한다. 나는 사랑한다. 나는 소망한다. 나는 증오한다" 등등. 그런데 행위가 소유개념으로 표현되는 예가, 즉 동사 대신 명사가 사용되는 예가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50p. 소비는 소유의 한 형태이다. 아마도 현대 “잉여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소유형태일 것이다. 소비는 이중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써버린 것은 빼앗길 염려가 없으므로 일단 불안을 감소시켜준다. 그런 한편, 점점 더 많은 소비를 조장한다. 왜냐하면 일단 써버린 것은 곧 충족감을 주기를 중단해버리기 때문이다. 현대 소비자는 나=내가 가진 것=내가 소비하는 것이라는 등식에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는지도 모른다.
115p. 소유적 실존양식에서는 나와 나의 소유물 사이에 살아 있는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소유물은 물론 나도 사물이 되며, 내게 그것을 소유할 가능성이 주어졌기 때문에 지금 나는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관계도 있을 수 있어서, 그것이 나를 소유하기도 한다. 내가 나 자신임을 확신하는 느낌이나 나의 심리적 건강이 “그것”과 가능한 한 많은 사물을 소유하는 데에 의존하는 경우이다. 이렇듯 소유적 실존양식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살아 있는 관계나 생산적 과정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를 사물로 만든다. 그 관계는 죽은 것이며, 살아 있는 관계가 아니다.
125p. 끊임없이 포기와 단념에 몰입하는 금욕행위는 어쩌면 소유와 소비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동전의 양면일 수 있기 때문이다.
161p. 소유는 사용에 따라서 감소하는 반면, 존재는 실천을 통해서 증대한다. (중략) 베푸는 것은 상실되지 않으며, 반대로 붙잡고 있는 것은 잃기 마련이다.
183p. 죽음 및 죽게 될 것에 대한 두려움은 근본적으로는 겉보기처럼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며, 만약 죽음이 이미 와 있을 때는 우리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87p. 기계로 인해서 시간은 인간의 지배자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단지 휴식시간에만 약간의 선택의 여지가 주어진다. 그렇지만 대체로는 여가시간마저 노동시간과 마찬가지로 조직화된다. 또는 이와는 정반대로 우리는 시간이라는 폭군에 대해서 완전히 나태한 상태로 반항하기도 한다. 시간의 요청을 전적으로 묵살하며 자유에의 망상을 길러낸다. 그러나 그것도 실제로는 시간이라는 감옥으로부터의 일시적인 탈출에 불과하다.
239p. 환경파괴가 본질적으로 치유 불가능하다고 볼 만큼 심각해졌는지는 아직 가늠할 수 없지만, 인간의 생명을 부지시키는 지구의 능력이 계속 손상되어온 것만은 분명하다.
이밖에도 미니멀리즘을 공부하고 나름대로 실천하려 노력 중인 나에게 와닿은 부분들이 정말 많다. 이 책을 읽으며 우선 물건을 소유하려는 집착에서 차근차근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미니멀리즘 컨텐츠들은 간혹 일단 비우고 시작해야 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계속해서 비워내야 한다는 강박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무작정 버리는 게 옳은 방향은 아니다. 내 속도에 맞춰 천천히 가진 것들을 진짜 필요와 용도에 맞추어 사용하고, 그러지 못한 것들은 진짜로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어 물건이 제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노력하기로 했다. 거기에 더해 과욕을 부리지 않기로 다시 한 번 마음먹었다. 물론 잘 지키는 건.... 많이 어렵다.
내가 스스로 지키자고 다짐하고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옷과 전자제품은 우선 가지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필요 없어지면 중고로 판매하고, 새로 사지 않으려 뇌에 힘을 많이 주고 있다. 취업하고 자취를 하게 되면서 한동안 고삐 풀렸었는데 참아내고 있다. 2) 화장품이나 생활용품 등 잡화는 광고와 할인에 현혹되지 않으려 또 다른 뇌에 힘을 많이 주고 있다. 동거 가족이 있긴 하지만 세탁 세제도, 바디 워시도, 화장솜도 모두 따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한 번에 많은 수량이 필요하지 않다. 세탁 세제 큰 거 한 통 비우는데 거의 1년이 걸리니까... 근데도 가족들과 같이 살 때를 자꾸 생각하고 쟁이려는 버릇을 아직 다 못 고쳤다. 그래서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들여다보고를 무한 반복 중이다. 수량도 내가 필요한 만큼만 사고, 필요에 의해 사는지 고민에 고민을 더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얼마 전 구강용품은 참지 못했지만 화장품은 이걸로 많이 자제하고 있다. 3) 음식도 과욕을 부리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원체 입이 짧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직장인이라 점심은 무조건 밖에서 해결하는데, 음식점들이 주는 보통 사람 1인분으로... 보통의 나는 최소 두 끼, 최대 세 끼까지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시락을 가지고 다녀야할지 벌써 몇개월째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이 정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문철학 도서는 아니더라도 미니멀리즘과 환경에 대한 책들을 더 꾸준히 읽고자 한다. 책으로 나를 꾸준히 자극하면서, 스스로 고안해낸 생활양식을 제대로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볼 계획이다. 언젠가는 나만의 미니멀리즘과 제로 웨이스트에 관련된 포스팅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오늘의 서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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