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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지만 작년에 다녀왔던 전시 후기를 올리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했었던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생의 찬미>>이다. 후기가 좋았는데 경기도 과천... 4호선 서울대공원역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조금 고민하다 다녀왔다. 차를 타고 가면 좋겠지만 저는 뚜벅이거든요^ㅁ^
나 같은 뚜벅초를 위해 가는 길부터 설명하자면, 4호선 서울대공원역에 내려서 걸으면 안 된다. 겁나 멀다. 서울랜드 다 지나가야 함. 지하철 내리면 무조건 4번 출구로 가세요. 4번 출구 앞에 여긴가 싶은 셔틀버스 정류장이 있어요. 주말에는 서울대공원 오가는 차가 많아서, 셔틀버스가 조금 늦게 올 수도 있어요. 희망을 잃지 말고 기다리세요. 그럼 셔틀이 옵니다. 타고나서 올라가면 놀러 온 차량이 많아 미술관 앞 주차장에 병목현상이 심하다. 간혹 주차장 못 들어가고 그 앞에 세워주실 수도 있으니 참고~! 

<<생의 찬미>> 전시는 채색화가 한국인의 삶에서 담당했던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시는 크게 5가지 전통적 역할에 주목한다.
(1) 삶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벽사(辟邪)
(2) 장수와 부귀영화 같은 좋은 기운을 불러오는 길상(吉祥)
(3) 학문을 숭상하고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하는 문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책가도와 문자도
(4) 개인과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기록화
(5) 아름다운 산수풍경을 보여주는 감상화

전시실마다 5가지 역할을 하나씩 소개하고 있다. 안내 책자는 그 흐름을 따라 우리에게 마치 어느 오래된 멋진 한옥을 방문한다는 상상을 하며 각 전시실을 봐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시작, 벽사는 상큼하게 춤추며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호랭쓰이다. 오윤 작가님의 무호도이다. 가지고 싶어서 작품 가격 검색해 봤는데 2700에 어느 옥션에서 팔린 적 있다고 한다.

호랑이를 좋아해서 주로 호랑이 가득한 부분만 찍어옴. 이건 성파 스님의 옻칠민화, 수기맹호도. 털 표현 등 세밀함이 마음에 들어 찍어온 건데… 작가가 조계종 최고지도자 스님이라는 사실은 방금 처음 알았다. 대호도라는 작품을 재해석했다고 한다. 이 시대의 희망을 잃은 젊은이들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힘차게 전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드셨다고. 오?! 이거 완전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요의 고급 버전 아닌지,,,

오순경 작가님의 오방신도 중 서쪽의 백호. 양쪽에 호피 무늬가 있어 호랑이 기운이 두 배가 된다. 나쁜 것들이 들어오려다 다 도망갈 것만 같은 비쥬얼.

남쪽을 지키는 주작. 여름을 상징한다고 한다. 넓게 편 날개와 깃털이 인상적이었다.

여기부터는 벽사를 지나 나온 이상적인 정원이라는 설정으로, 십장생과 화조화를 주로 보여주는 두 번째 전시실이다. 시작은 나오미 작가님의 용오름. 한 인간의 일대기를 그려 넣은 작품이었다. 9폭 병풍 모양이라 하나씩 거슬러 올라가며 해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현대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있고 하나하나 구성이 알차서 보는 재미가 장난 아니었다.

이런 디테일 너무 귀엽지 않나요,,,

이건 김선우 작가님의 파라다이스. 모리셔스에서 멸종된 걸로 알려진 도도새를 주로 그리는 분이라고 한다. 일월오봉도와 십장생도 사이에 놀고 있는 도도새들이 한가득하다. 귀여운 색감과 배치에 반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귀엽지 않다. 평화로운 환경에서 살다가 나는 법도 까먹고 바보새로 불리는 도도새*에게 현대인을 투영했다고 한다. 틀 속에 갇혀 여기가 낙원이라고 착각하고 안주하는 사람을 도도새로 보고 있는데. 그거 나 아님?!ㅠ 회사가 적당히 다닐 만해서 안주둥인데 갑자기 뼈를 맞아부렸다.
* TMI) 도도(Dodo)라는 명칭은 새를 보고 사람들이 포르투갈어로 Doudo라고 부르던 게 굳혀졌다고 한다. Doudo는 Doido의 옛 표현으로, 돌아버린, 제정신이 아닌, 상식에서 벗어난 쯤으로 해석하면 된다.

작품명도 찍어왔어야 하는데 마음에 드는 부분들만 찍어와서 기억이 잘 안나네. 이건 전혁림 작가님의 백락병이라는 작품이다. 여러 작은 도판을 모아 하나의 병풍을 만들었던 백납병이란 형식을 변형해, 백 가지 즐거움이라는 추상화된 길상 이미지를 만들어내신 거라고 한다.

일부만 찍어서 그렇지 원래는 엄청 큰 작품이랍니다.

단청 무늬라고 하나? 그걸 디지털 아트화 해두었더라. 김혜경 작가님의 길상. 예뻐서 찍어봤다.

이렇게 건축양식에서 따온 화려한 이미지들이 화면을 채우고 재배치되면서 움직인다.

윤정원 작가님의 우리들의 시간. 비단에 금박, 채색이라고 한다. 신기해....

옛 전시 도록들도 많았다. 이건 김기창 작가의 신비로운 동방의 샛별이라는 작품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한국호랑이대전이라니!! 또 열어주세요ㅠㅠ 더 줘ㅠㅠ

그다음 공간은 오방색을 주제로 했다. 높은 층고의 열린 공간에 설치된 작품을 보고, 오잉 또잉 하얀 호랑이인가 하면서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이렇게 알록달록 허면서 현대적인 호랭쓰들이 있다.

정면에서 보면 이런 느낌 색감이 다채롭고 얼핏 보면 아프리카 국가를 표현한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이사이 호랑이 이미지가 숨어 있다.

이 작품은 전통 오방색을 재해석한, 이정교 작가의 사•방•호 라는 설치 작품이다.

그다음은 서가에서 찾은 문자도와 책가도, 기록화라는 컨셉의 전시실이다. 시작은 문자도. 마음에 새기고 널리 실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낸 그림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들 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로 제작한 문자들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안성민 작가의 날아오르다. 문자가 가진 의미 그대로 나는 듯하다.

한글과 달리 용이 그려진 영문 버전. RISE UP.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호랑이 기운이 아닌 용 기운 부적이랄까...

문자도에 자주 쓰이는 각 글자 효제충신 예의염치 의미를 친절하게 설명해 줘서, 한문에 약한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했다. 그림의 글자를 열심히 비교해 가면서 봤다.

이미지들이 움직여 더 재밌었다. 김혜경 작가님의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자세히 보면 이런 식으로 한자 획과, 획을 형상화한 그림들이 움직이면서 생겨난답니다. 그게 완성되면 하나의 글자가 되는 구조였다.

한자 알못인 나에게 시련을 주었던 작품이지만 너무 예쁘고 귀엽다. 이응노 작가님의 의(義) 문자도.

그다음은 책가도와 연관된 작품들이다. 이지숙 작가님의 부귀영화-뒤꽂이와 자개함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 온갖 길상의 의미를 담은 기물들과 보물들, 그리고 서적들을 배치하는 책가도답게 다양한 물건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그리고 기록화로 바로 넘어간다. 작품이 진짜 진짜 많았고 좋았는데, 감상에 집중해 많은 사진을 찍지는 않았나 보다... 이건 나의 홈타운이기도 한 분당신도시의 초기 모습을 표현한, 유한이 작가님의 이사라는 작품이다. 대충 어디인지 감이 와서 더 흥미롭게 감상했다! 친구들 보내줬는데 바로 분당(?) 이러면서 알아봐서 더 신기했음

신기하니까 정면에서 찍은 사진 한 번 더. 초기 분당 신도시를 아는 분이라면 어딘지 바로 알아볼 듯?!

전시의 마지막 부분은 서가를 나와, 다시 정원에 들어서며 보이는 담 너머의 자연을 그린 산수화가 주제이다. 무릉도원도 있고... 백두산 천지를 표현한 작품도 있었는데... 내 눈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손동현 작가님의 이른 봄. 조춘도라는 작품을 재해석했다고 한다. 조춘도는 11세기 중국의 화가인 곽희가 봄의 풍경을 그려낸 걸작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메마르고 추운 겨울에서 조금씩 벗어나려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화려해진 색감으로 봄이 거의 다 왔음을 알리는 듯 보이기도 하다.

일자가 아닌 ㄱ자 배치라 오히려 몰입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냥 가기엔 아쉬워서, 옥상정원에도 잠시 올라가 봤다. 옥상정원에서는 <시간의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MMCA 과천관 특화 및 야외공간 활성화를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의 일종으로... 미술관 내외부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공간을 통해 과천의 자연 풍광을 보여주는 일종의 쉼터를 만든 거라고 한다. 2023년 올해 6월 25일까지 한다고 하니, 국현미 과천에 간 김에 들러보시길 추천한다.

주차장에서 더 내려가면 동물원?과 만나는 중간 지점이 있다. 코끼리 열차 승하차장이다. 오래간만에 추억 돋게 코끼리 열차를 탑승했다. 어른 기준 인당 1500원이다.

열차를 기다리면서 옆에서 슬러시도 사 먹었다. 이제 이런 거 자유롭게 사 먹을 수 있는 으른이야 나는...

슬러시만 먹기 아쉬우니까 요즘 먹기 힘든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사 먹음. MMCA 방문기는 여기서 갑자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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